용인 샘물 호스피스 병원 1년전 봉사 이야기.

1년전 용인 샘물호스피스 봉사는 저에게 아주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대학생입니다. 시간이 많은 대학생인데 제대로 된 봉사를 잘 못해보았습니다.

이곳에서 3박 4일정도 있으며 많은 환우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 중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30대 형이 었습니다. 아마 지금은 돌아가셨을 것 같네요..

이 형은 30대 초반에 피부암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샘물호스피스 병원에 두 번째 온 것이라고 합니다.

한 번은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겼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차츰 괜찮아져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데요. 제가 갔을 때는 또 병의 악화로 인해서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고 하네요.

형을 보면 항상 밝은 모습에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네요. 맨날 영화 보고, 게임하고 ..

그 생활을 반복하는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같이 장기도 두고, 원래 나중에는 환우와 연락하면 안되지만 같이 연락도 했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다시 개인적으로 형을 보러 가기도 했었죠.

블log를 하다가 샘물호스피스에 안 좋은 이야기를 본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곳에 있다가 며칠 되지 않아 돌아가셔서 그런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네요. 의사 선생님이며 간호사 선생님이며 정말 힘들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른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의료 현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감추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원주희 목사님도 참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젊은 청년이어서 전도사님과 함께 무를 실으로 봉사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차를 가지고 계시지 않아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요.

그러다가 목사님의 처음 시작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원래 환우분 2명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 잘 되는 약국도 문을 닫고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 2명을 돌보기 위해 그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 

차를 타며 직접 호스피스 전 병원 아니 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멀리서보아도 아주 작은 가정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변 마을에서도 반대가 상당히 심했다고 합니다.

솔직히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시는데..

그 반대를 무릅쓰고 이제 목사님께서 샘물호스피스를 세우시게 되죠.



아 이 곳에 특이 한점이 있다면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것이 많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이 때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물론 종교가 없으신 분들에게는 살짝 고통이 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강요하는 것은 아니니...

예배는 원주희 목사님께서도 하시고 다른 부목사님들이 돌아가시며 하였습니다.

그곳의 설교는 죽음과 더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피곤하지만 제 마음속에 더 잘 들어왔었습니다.



아 그리고 목욕 봉사도 참으로 기억에 남네요.

한 분이 계속적으로 봉사를 도맡아서 하셨었는데요.

나이가 있으신데도 힘이 있으시고..

그렇지만.. 이 일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우분들을 목욕시키는 것이라

20대인 저도 상당히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네요. 

또 물과 함께 몇 시간동안 계속 있는 것이라 그것 또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생각이 나는데로 이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샘물호스피스에 많은 봉사자들이 갑니다.

또 많은 환자분들이 가죠.

그 곳에서 많은 치유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환자분 혼자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닌

많은 봉사자들과 목사님과 가족분들의 따뜻함속에서

돌아가실 것이 분명합니다.